우리가 역사를 굳이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사를 재평가해서 오늘의 발전에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의 잣대로 재평가도 어느정도지. 양민 학살이 시대에 따라 평가가 바뀔 사안인가? 부정 관건 뇌물 선거가 그러한가? 이승만 없었으면 민주주의가 없었을거라고? 그거야 말로 뇌피셜 아닌가? 그런건 누구라도 할 수있다. 박정희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이미 일본, 미국 다 따라잡고 세계 1위대국이 되었을거다. 라고 하면 뭐라 할건가? 위에 글이 헛소리 인것 처럼 이승만 민주주의 드립도 헛소리가 맞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평가는 뇌피셜일뿐 팩트가 없다. 일어난 일만 가지고 평가하는 거다.
박정희, 이승만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그런 사람들은 공을 인정하기 싫겠지. 하지만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켰고 이승만이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임을 부정하긴 힘들어. 그거 부정하는 사람들한테 반박한답시고 과를 포장하는 건 그놈들과 똑같아지는 거야. 이미 학계에선 제법 냉정하게 공과를 구별해놨어. 다만 유튜브, 정치인들이 자기 밥벌이를 위해 선동할 뿐이야.
6.25만 놓고보면 이승만이 아니였으면 전부 공산화 됐을 가능성이 크지.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됐어도 6.25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런승만이라고 하지만 선조, 현종, 이승만 모두 헌했지만 그것이 신의 한수였다. 그리고 이승만이였기에 미국의 빠른 참전이 가능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음. 결국 김일성 그 개새끼를 야심을 막을 망한 사람은 그 당시 이승만 밖에 없었지. 권력이 길어지면서 추해지는 것은 모든 독재자의 길이고... 공은 공이고 과는 과로 평가해야지.
일명 ‘제헌국회 기도문’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본 회의록에 속기된 것으로서 임시의장을 맡으신 이승만 박사는 단장 의장석에 등단하여 전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안하여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 ‘제헌국회 기도문’이다. 당시 제헌국회 의원 198명이 참석했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회의록 기록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 우리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정시(呈示: 꺼내 보임)하신 것으로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 원통한 일을 풂)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하옵컨대,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智)와 인(仁)과 용(勇)과 모든 덕(德)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경제발전의 원인은 그 당시 리더의 선택에 따른 현재의 결과로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공을 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리더십, 기업가정신 등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거죠. 쉽게 생각해서 우리나라 역사 속의 위인들이 했던 선택에 대한 결과로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인데, 누가 되어도 된다는 그런 안일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리더가 돼 본 적도 될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말인 것이지요. 하다못해 한 가정에서도 가장의 선택에 따라 집안에 변화가 많은데, 아무나 해도 된다는 말은 진짜 그냥 누군가를 폄훼 하기위한 말일뿐이라 생각되네요. 그냥 공을 인정하기 싫은 것 뿐.
북한이랑 같은 민족입니다… 경제는 같나요…? 외교나 미국의 경제 지원이요…? 그걸 누가 하고 받아온거죠…? 현재 북한과 경제력 차이를 생각해보시면… 님이 말씀하시는 “복잡계 이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같은 출발선에 있던 대한민국과 북한의 차이는 어마무시하게 벌어졌네요 참 대한민국 대단합니다! 근데 그걸 다시 6.25때처럼 나라를 분열로 이끄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참 걱정입니다!
제가 못배운사람이지만 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옛날에 90년대 고속버스에서 담배도 피고 심지어 좌석에 재떨이도 있었습니다 80년대 말도 안되는 군대부조리 많았습니다 70년대 요즘처럼 인터넷뉴스가 어디있습니까 다 신문보죠 그럼 60년50년대 동네소문 플러스 신문 사람들 그러니까 옛날 그시대를 지금 우리눈으로 보면 다 이상해보이고 이해안가고 그러는게 맞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 시대상황을 고려해서 이런판단저런판단을 했겠구나 생각하는게 맞는거 같고요 지금 님의 생각도 5년10년20년 지나면 내가 우매했구나 몰랐구나 할수있는게 사람 인거 같습니다 여튼 지금은 이승만이건 박정희건 지금 현재는 아직까지는 아시아뿐만 아니고 지구에서는 잘살잖아요
히틀러는 1차세계대전 패전국이자 채무국인 독일을 몇년만에 부국강병을 이끌어내고 로켓, 전차 기술의 발전 및 안정된 사회체제를 구축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어려웠던 독일의 역사적 상황에서 부국강병을 이끌어낸 히틀러의 장점을 이해하며 본 받아야하며, 좋은 사례로 역사속에 긍정적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이니까
맞지. 하지만 히틀러는 독일의 부국강병만 이뤄낸게 아님. 심지어 2차세계대전의 마침표를 찍은 원폭투하도 히틀러로부터 시작했음. 히틀러가 원폭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를 견제하기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개발성공. 그렇게 이주한 과학자들은 미국의 과학의 기초가 되었지.
그리고 히틀러가 없었다면 지금 존재하지 못했을 나라들이 많음. 한국, 이스라엘을 포함. 히틀러전 유럽의 영향력에 지배되었던 아프리카, 아시아 나라들의 독립도 쉽지 않았을것. 유럽의 지배력을 부순게 히틀러임. 현재의 세계의 역사는 히틀러의 영향력 아래서 이뤄진 것들. 역사상 누구보다 많은 세계적 영향을 준 인물.
이승만은 지금기준으로 평가하면 안되고 그시대에 맞게 김일성과 비교하여 평가해야한다 당신이 1950년에 살았다고 생각해보자 김일성을 선택할거냐 이승만을 선택할거냐??? 그시대에 살았으면 무엇이 옳은지 판단이 안설수도 있다 70년이 지난지금 생각해보자 이승만 자유 민주주의가옳았음이 확실하다
국민학교 상급반 시절에 학교에서 틀어준 라디오 뉴스에서 이승만 전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전교생에게 초대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려줄 만큼 교실의 분위기는 숙연했었다.
중,고,대의 학창시절엔 박정희를 참으로 미워했었다. 집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하면 어머님께선 기겁하셨다. 순사들이나 정보원들이 들으면 잡혀간다고. 손가락을 입에 대시며 아주 진저리를 치셨지.
5개년 경제개발계획? 그건 민주당에서 만들었던 걸 베낀것 아닌가? 심지어 민주당의 계획이 훨씬 더 좋잖아? 대학 교련시간은 땡땡이가 당연했고 군대에선 억지로 전두환의 정책에 투표했었다.(아쉽게도 자세한 기억은 없어졌다.) 광안리가 한창 뜰 즈음엔 가라오케를 했었는데 올림픽이 끝나자 한 달 만에 전두환의 사치향락 풍토가 심하다는 한 마디에 하룻밤 새 내무부 장관령으로 밤장사는 끝장나버렸다. 올림픽 전의 그 자유분방하던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가고... 밤새도록 손님이 끓었던 바닷가 술집인데.. 동네 달건이들 다 정리하고 이젠 돈 셀 일만 남았구나 했었는데 ㅉㅉ.
일제에서 비롯되어 군부독재로 이어진 강압과 구타의 시대엔 집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참 쉴 새 없이 맞았었다. 부모에겐 자식의 관심이나 자존심 따윈 필요없었고 발가벗겨서 옥상에 올리거나 무릎꿇려 뺨을 치고 몽둥이로 때렸다. 오로지 그들의 목적은 일류학교와 전교1등의 우등 아들을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자 목표였다.
그 트라우마로 국민학교 시절부터 수재로 소문나서 이 학교, 저 학교로 스카웃되어 전학하고, 소위 일타선생들의 특별반이나 정예 과외반에 늘 무료로 초청되어 옮겨다니던 호사를 누리며 일류 중학교 시험에 합격했었지만 입학과 거의 동시에 공부는 손을 놓았다. 6년만의 졸업식엔 오지도 않으면서 졸업앨범조차 사 주지 않았는데 공화당위원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은 그날 당장 표구를 해서 마루 정면에 걸어 놓은 걸 보고 내가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였음을 알았다.
그제서야 되새겨보니 내가 맞을만한 잘못은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고 설령 잘못이 있었던들 맞을 일은 결코 아니었으며 그냥 가정폭력이었을 뿐, 미처 말리진 못 하고 둘러서서 안타까워만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처음 오리엔테이션에서 도서관이란 걸 처음 보자마자 했던 결심대로 도서관의 책을 내가 볼 수 있는 수준에선 다 봤다. 마지막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는데 젠장, 그건 지금 봐도 어렵더군. (졸업 전에 다 보자고 했는데 3학년 올라 갈 즈음 사전류, 한문책 외엔 볼만한 책이 없었다. 그 당시엔 지금만큼은 책이 많지 않았고 결국 시시하다고 팽겨쳤던 무협소설의 속시원한 호방함에 빠져버렸다! ㅋ 아, 그리고 에리히 캐스트너의 '날아가는 교실'은 거의 45회독을 했구나. 참으로 내 속을 달래주는 탈출구였다.)
아무튼 나의 유년과 청년을 거쳐 대통령들은 거의 악마시되었다. 그런데 영웅시되던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에 이어 현재의 윤석열까지 많은 대통령을 모두 뽑아봤는데 날이 갈수록 어째 박정희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더구나. 작아도 다부지고 용맹하며 확신에 차서 부지런히도 전국을 돌며 경제발전을 채근하던 힘찬 모습이 그리워지더군.
다시 생각을 더 거슬러 가보니 어른들께서 이박사, 이박사하면서 친근하게 부르시던 모습들과 우남공원(용두산 공원)을 자랑스레 아끼시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신문에서, 교과서에서 그토록 보았던 이승만의 잘못이나 무책임한 정책들과 대중의 정서는 또 다른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땐 지역감정따윈 없었다네. 김대중은 영남에서, 박정희는 전라도에서 더 많은 표를 얻곤했다. 아버지와 같이 갔던 젊은 김대중의 부산역 광장의 대선 연설엔 엄청난 부산시민들이 환호했었다.
이제 나이가 더 들면서 여러가지 자료와 시중의 이야기들을 알게되었고 때론 철부지들의 확증편향적인 적개심이나 세대갈등, 남녀갈등에 지역갈등과 빠와 까의 대립도 알게됐다. 이런, 청춘남녀 간에도 미움이 우선한다니!
서두가 길었지만 70객이 이제라도 알게된 것은 이 시대의 논리로 그 시대를 재단할 수 없다는 것과 이승만은 건국과 안보에서, 박정희는 경제개발과 한민족의 자존감 부양에서 세계의 그 누구도 쉬이 할 수 없는 공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지독한 이와 박의 까였지만 이젠 일부 빠로서도 기능하고 있으며 후대들도 좀 더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 이승만이 비록 많은 국민을 죽였다지만 그 죽은 국민들은 과연 온건하기만 한 국민이었는지와 일방적인 매도를 당해왔다는 점, 박정희가 비록 정경유착의 폐해를 남겼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뉘라서 이런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박정희밖에 없고 영원히 그만 대통령이 될 거라는 착각속에서 산 적이 있다네. 그럼에도 머리가 굵어지면서 군부에 맞서 부마항쟁과 6.10운동 등으로 그들과 맞서왔고 나의 국민학교 동급생은 부림사건(영화'변호인')의 실제 피해자이며 또 다른 친구는 부마항쟁 때 군경들에게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
우리의 과거를 혹은 인물들을 너무 극단적으로 보지 말며 남녀 간에도 좀 더 사랑과 설렘이 교차되길 바라네. 다들 건승하시기를 빌고 긴 글 읽어주셔서 참으로 고마우이!
이승만은 공.과 가확실히드러난다. 공은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았으며. 또한 과는 민간인학살이다.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미군이 un이 대한민국수호를위해 헌신했을까? 반대로 민간인학살또한 4.3사건 제주도민9명중1명을 죽었을정도로 엄청많은 제주사람들이죽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수호 와 민간인학살 을 저울질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조건 까기만할수는 없다
사실 학살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김일성은 학살 안했겠나?? 김일성도 민간인 학살 엄청나게 했다 왜 아무도 김일성 공산당이 저지른 학살은 이야기 안하나?? 따라서 전쟁을 하면 안되는것이다 따라서 이승만 정부의 학살은 김일성이저지른 학살과 비교되어야하고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특수성으로 생각해야한다
대한민국 국민들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쫓겨난거고.
친일파 척결도 방해했고.
이걸 다시 끌고와서 영웅화??
웃기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