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맞으면 코로나 안걸리나? 걸린다. 백신은 정식적인 임상을 거쳤나? 안거쳤다. 백신 맞고 코로나 걸리면 통증이 줄어드는가? 임상 결과 없음. M-RNA 백신은 이전에 사용된적이 있는가? 없음. 모든 임상 실패 감기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전파를 늦출수 있는가? 변이로 인해 불가능 변이된 바이러스는 기존 백신이 면역이 있는가? 없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의 일종이며 RNA 바이러스로 변이가 빠르다 그러므로 새로 변이가 일어나면 기존 백신으로는 면역을 획득할 수 없다. 그래서 독감 백신은 매년 유행할 바이러스를 예측해 매년 접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독감 백신을 맞아도 독감에 걸리는 것이다. 결론은 절대적으로 백신은 변이가 빠른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억제 할 수 없다. 결국은 인체내 면역력으로 극복해야 되는 것이 맞고 또한 치사율 자체도 매우 낮다. 그 근거로 기저질환 없는 일반인의 경우 치사율이 0.01% 미만이다. 이 말은 10000명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1명 미만이 죽는다는 거다.
기저질환 있거나 면역력 약한 노인등 많이 죽었잖아 전세계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다 조작이냐? 한마디로 기저질환자와 노인들을 위해서 전세계 사람들이 맞은건데, 감기보다 더 전염력 강한데 보통 사람들은 괜찮은데 약자들은 죽어버리는 그런 병이었지. 적자생존으로 보면 백신이고 마스크고 뭐고 필요없고 약자와 노인들 거의 다 죽어버리면 끝날 일이었어. 만약 60대 이상이나 기저질환자들을 철저하게 나머지 인구와 격리시킬수만 있었다면 백신 필요 없긴 했어. 하지만 인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그 난리를 쳐서라도 약자와 노인들 희생을 최소화 시킨거고.
기저질환자나 노인들을 위해 백신을 맞았다? 이게 말도 안되는 모순인게 백신을 맞아도 안맞아도 코로나에 걸린다. 즉 코로나는 백신을 맞든 안맞든 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기저질환자나 노인들을 위해 백신을 맞았다라고 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코로나 사망자는 조작이 많다 한국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미국병원에서는 병원에서 죽은 환자가 코로나 양성이 나오면 보조금을 두둑하게 받는다. 그래서 명백히 다른 사인으로 죽은 사람도 코로나 검사를 했던거고 이로 둔갑시키는 것도 비일비재 했다. 언론을 100% 믿는 사람들은 동의를 하지 않게지만 사실이다.
"코로나19발생 이전의 세상, 다시는 오지않느다"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권준옥이 했던 말이다. 너무 웃기지 않는가?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백신을 맞았다. 근데 한 국가의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코로나 이전세상은 다시오지 않는다고 단언을 하는게
잘못은 크게 3가지가 있다. 1. 알고 하는 잘못 2. 모르고 하는 잘못 3. 알수도 있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모르고 하는 잘못
최근에 심리학자가 쓴 책을 읽었음.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행복이 온다는 ‘결론적 해피엔딩’을 말하는 책이었음.
그런데 과연 인생은 해피엔딩일까?? 알베르 카뮈는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부조리하다고 주장함.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 그런 사람은 아직 부조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음.
월화수목금 아무생각 없이 일하며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삶의 의미는 뭘까?라고 질문을 던질 때가 있음. 바로 그때가 부조리를 인식하는 순간임.
어머니나 아내의 죽음,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과 같은 부조리한 사건으로 부조리를 인식할 때도 있음.
아무생각없이 타율적으로 살다가 부조리를 인식한 순간, 사람들은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함. 삶의 의미를 뭘까? 나는 왜 살아가는 걸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함.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냥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음.
알베르 카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세상의 부조리를 회피한다고 말함.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아무생각없이 타율적으로 사는 사람은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임. 종교라는 확실하지 않는 희망 속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도 부조리를 회피하는 사람임. 자살을 함으로써 인생의 부조리를 제거하는 것도 부조리를 회피하는 사람임.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를 회피하지말고 끝까지 주시하고 생각하고 반항하고 버티라고 이야기함. ‘희망없는 반항’ 이것이 알베르 카뮈의 핵심 철학임.
희망한다는 것은 미래를 살겠다는 것임. 그런데 미래는 곧 죽음임. 우리는 늘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속에 살고 있음. 우리는 선고일이 정해지지 않은 사형수와 같음.
시지프의 형벌처럼 우리의 삶도 쳇바퀴 처럼 돌아감. 시지프가 우리와 다른 점은 자신의 형벌이 무용하고 희망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임.
시지프는 희망하지 않고 거대한 돌과 한 몸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하며 거대한 돌을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림.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용한 행위를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이유는 희망 없이 순간 순간 돌에 집중하기 때문임.
장밋빛 미래를 바라며 사는 것보다 무용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명상을 하고 매일 달리기를 하고 매일 청소에 집중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