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집은 무안이었고,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그곳에 가게 되었다. 20여 년 전 그때에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 폰 대신 휴게소에 흔히 팔던 전국도로망 지도책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막 개통되어 길은 수월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당시 나는 수도권 이외의 지리적 이해가 부족하여 무안과 부안을 구별하지 못하여 부안에 도착하여 형에게 전화하여 길을 물었었다. 그리고 곧 무안은 부안에서도 최소 1시간은 더 내려가야만 하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게되고는 당황하였으나 초행길이라고 시간을 넉넉히 두고(약 3시간) 출발한 탓에 형의 결혼식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시골회관에서 치러진 조촐한 결혼식 후에 읍내 형의 친척 집에서 점심을 겸한 잔치가 펼쳐졌다. 그리고 홍어 없이는 잔치가 아니라는 무안답게 질 좋은 홍어가 있었다. 해산물과 회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처음 접하게 될 홍어에 기대가 부풀었다. 옅은 선홍빛을 띠는 홍어는 빛깔이 무척이나 고왔다.
다른 어르신들의 점심상이 먼저 차려지고 드디어 나에게도 점심상을 차려졌고 선홍빛의 홍어를 부푼 맘으로 먹어보았다. 일부러 냄새를 맡아보거나 일부러 코를 막고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도 하지 않아 냄새에 대한 정확은 기억은 없지만, 특별히 역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첫 홍어는 나를 당혹하게 하였다. 별다른 냄새가 없었던 홍어는 내 입안에서 강한 암모니아를 발산하였다. 숙성이 잘 되었던 것인지 역한 냄새는 없었으나 강한 암모니아가 내 입안을 헐게 하였다. 그냥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헐었다. MBTI에서 “I”인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소리 없이 휴지에 홍어를 뱉었다. 나는 그것이 내 일생 마지막 홍어 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일이 있고 난 뒤 반년쯤 지나면서 그때 그 홍어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 욕망은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사그라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난 후에 서울의 어느 식당에서 다시 홍어를 접하는 용기를 내었다. 딱 보기에 빛깔도 무안의 그것보다는 못 했으나 입안을 헐게 하지도 않았다. 이후 홍어 마니아가 된 것은 아니지만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홍어에 막걸리를 즐기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게 된 것도 8년 차에 접어들며 더더욱 제대로 된 홍어를 접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가끔 한국마트에 삭히지 않은 홍어를 사다가 키친타올로 잘 감싸고 냉장고에 1~2달 놔두어 홍어를 삭혀 먹곤 한다. 그리고 홍어를 먹을 때마다 무안에서 뱉었던 홍어를 삼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냥 웃긴건데 웃으면 안돼냐..? 왜 방송하면서 보는 놈들 기분상하는거까지 걱정하면서 방송을 해야돼는거냐 보는놈들 지들끼리는 홍어먹으면서 안낄낄 거려? 아니 왜 ㅆㅂ 세상이 이렇게 다 불편한놈, 모든거에 다 피해입는 피해자놈들 천지냐 ㅆㅂ 아오 진짜 왜 그러는건데 ㅆㅂ 그냥 좀 유머는 웃고 말자 ㅆㅂ 누가 불편한건데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