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a2024.03.21 01:13
"대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고작 의과대학을 증원한다고 아픈 환자를 놔두고 진료실을 박차고 떠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1. 의사는 의학이라는 과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학적 결정은 언제나 철저하게 확률을 따릅니다. 진단을 내릴 때도 확률을 따르고, 치료방법을 결정할 때도 확률을 따릅니다. 예를 들어 환자의 증상, 검사 결과 등을 종합했을 때 A라는 질병의 확률이 70%, B라는 질병의 확률이 30%라면 의사는 A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치료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C라는 치료법의 성공률이 60%이고, D라는 치료법의 성공률이 40%라면 의사들은 C라는 치료법을 선택합니다. 의사는 언제나 확률을, 그리고 숫자를 따릅니다.

2. 정부가 '단 한 해만에 65%를 늘리는 파격적 의대증원'이 담긴 '필수의료정책패키지'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줄여서 '필정패'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이 정책이 최종적으로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 의사들은 그 정책을 따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책이 대한민국 의료를 무너뜨리고 그 결과 국민건강에 크게 위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 의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인이 가져야 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초기부터 제가 '사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정부가 발표한 필정패에는 의대증원 뿐 아니라, 현재의 의료시스템을 크게 위협하는 요소들이 들어있습니다. 개혁도 개선도 아닌 개악이 되는 제도들입니다. 비급여 통제도 그 중의 하나인데 가장 큰 것은 의대증원에 따라 상승하게 되는 의료비를 통제하기 위해 등장하는 '지불제도개편'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지불제도개편이란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행수제)'를 '가치기반 제불제도(가기제)'로 바꾼다는 것인데, 가기제란 얼핏 멋있게 들리지만 2012년 의사들이 그토록 막기 위해 투쟁했던 '포괄수가제' 등이 포함된 지불제도입니다. 3/18 박민수 보건복지부차관은 “행위별 수가제도의 단점을 극복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국민의 건강 회복이라는 성과와 가치에 지불하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혁신해 나가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지금처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대로 환자와 보험사가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고 가치기반 지불제도 중 대표적 방식인 포괄수가제는 진단 또는 치료를 한묶음으로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의사가 원가를 절감할수록 이득이 되는 방식입니다. '최선의 의료'를 해왔던 대한민국의 의사들이 '원가를 절감할수록 이득인 경제적 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식 의료로 바뀌는 것인데, 우리나라에 영국식 의료를 도입한다는 것은 환자와 의사 모두 불행에 빠지는 길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의사수 증가에 따른 의료비를 억제하기 위해 가기제 뿐 아니라 대만처럼 국민이 쓰는 전체 의료비의 총액을 제한하는 '총액계약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기제는 총액계약제로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채택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의사는 늘리고 의료비 총액은 제한한다면 의사들은 이익보존을 위해 원가절감에 나서게 될 것이고, 총의료비 제한으로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료를 법적으로 제한 받아 제공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의료가 어떻게 될지 의사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것입니다.

4. 결론 : 의사는 확률과 숫자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은 정부의 필정패라는 정책이 강행될 때 세계최고의 접근성과 높은 의료의 질이라는 가성비 높은 대한민국 의료가 붕괴되고 이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생명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정패를 막기 위한 단기적인 의사들의 저항으로 인해 국민 생명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 피해의 숫자가 필정패를 막아냄으로 인해 구할 수 있는 생명의 숫자보다 적다면 의사들은 훗날 더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진료현장을 떠나는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수많은 전공의들과 교수들이 자신들의 인생이 달린 사직서를 제출하며 환자의 곁을 떠나는 결단을 내리는 배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편하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노후를 즐겨야 할 제가 압수수색을 받고, 출국금지를 당하고, 경찰서의 포토라인에 서고 의사면허취소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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