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2020.06.30 07:26
양난이후 공명첩찍어내면서 양반수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양반은 세금을 내지않기때문에 이는 국가재정약화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이건 배운다. 뭘 알고 얘기하던가 모르면 좀 찾아라

본래 10% 내외였던 양반은 점차 늘어났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 양반이 되려했다. 변화하는 산업구조에서 우월한 경제력을 갖춘 농상공인과 천민들은 양반으로의 신분 상승을 꾀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신분세탁을 빗대어 조선후기 신분제의 붕괴를 알렸다. “상민들이 군역을 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리거나 족보를 위조한다”. 그 실태는 심했다. 울산의 경우, 1729년(영조 5년) 계층구조가 양반 26%, 상민(백성) 60%, 노비 14%였다. 그런데 양반층은 꾸준히 증가하여 150여 년이 지난 1867년(고종 4년)에 양반 64.5%, 상민 34%, 노비 0.5%로 바뀌었다. 양반만 있는 세상이 되었다ttps://mnews.joins.com/article/21480664#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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