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ㅈㅅㅈ2024.04.13 14:37
최근에 심리학자가 쓴 책을 읽었음.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행복이 온다는 ‘결론적 해피엔딩’을 말하는 책이었음.

그런데 과연 인생은 해피엔딩일까?? 알베르 카뮈는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부조리하다고 주장함.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 그런 사람은 아직 부조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음.

월화수목금 아무생각 없이 일하며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삶의 의미는 뭘까?라고 질문을 던질 때가 있음. 바로 그때가 부조리를 인식하는 순간임.

어머니나 아내의 죽음,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과 같은 부조리한 사건으로 부조리를 인식할 때도 있음.

아무생각없이 타율적으로 살다가 부조리를 인식한 순간, 사람들은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함. 삶의 의미를 뭘까? 나는 왜 살아가는 걸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함.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냥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음.

알베르 카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세상의 부조리를 회피한다고 말함.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아무생각없이 타율적으로 사는 사람은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임. 종교라는 확실하지 않는 희망 속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도 부조리를 회피하는 사람임. 자살을 함으로써 인생의 부조리를 제거하는 것도 부조리를 회피하는 사람임.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를 회피하지말고 끝까지 주시하고 생각하고 반항하고 버티라고 이야기함. ‘희망없는 반항’ 이것이 알베르 카뮈의 핵심 철학임.

희망한다는 것은 미래를 살겠다는 것임. 그런데 미래는 곧 죽음임. 우리는 늘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속에 살고 있음. 우리는 선고일이 정해지지 않은 사형수와 같음.

시지프의 형벌처럼 우리의 삶도 쳇바퀴 처럼 돌아감. 시지프가 우리와 다른 점은 자신의 형벌이 무용하고 희망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임.

시지프는 희망하지 않고 거대한 돌과 한 몸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하며 거대한 돌을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림.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용한 행위를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이유는 희망 없이 순간 순간 돌에 집중하기 때문임.

장밋빛 미래를 바라며 사는 것보다 무용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명상을 하고 매일 달리기를 하고 매일 청소에 집중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해피엔딩을 바라기 보다 지금 이 순간 집중하는 게 더 좋은 삶이 아닐까?

희망없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소진하며 반항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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