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2024.02.11 16:28
명절 때마다 나오는 얘기임. 홍동백서,조율이시 같은 것도 사실 유명한 어느 사림 종가집에서 우리는 이렇게 한다~라고 그 집안 예법 책자에 적어놓은 걸 해방 이후에 한국예절법 이런 책을 만들면서 걍 가져다 넣음. 일제치하 겪다가 막 탄생한 정부에서 조선전통 이어야 겠다는 생각에 나름 예법 좀 안다는 사람들 불러다가 만든 책인데 참고할 자료도 별로 없고 하니 지방 양반가 종가집들 돌아다니면서 물어보고 참고하고 해서 만듬. 즉 일반적인 예법이 아니라 특정 몇몇 종가집에서 하던거임. 제사, 차례 음식 차리는 법은 성리학 계파, 사대부 집안마다 다 달랐음.

유명 양반가나 사림의 계파별 사대부들은 각자 공부하던 성리학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달랐음. 일단 기본적으로 충효, 겸손 이런건 공통적으로 추구하지만 어떤 학파는 일상부터 제사,차례까지 모두 다 검소해야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학파는 다른 건 몰라도 조상에 대한 제사, 차례는 풍성하게 하는게 예의 라고 생각했음. 그리고 그해 풍년이나 흉년이냐도 제사, 차례상에 영향을 많이 미쳤음. 흉년이라 다 굶고 있는데 우리 조상만 잘 먹이겠다고 많이 차리는 것도 지양하는게 원래 성리학임. 그래서 검소를 중시하는 사대부 집안은 정승, 판서 집안이거나 지방 사림의 거두격이면서도 딸랑 4-5가지만 올리며 지내는 집도 많았음.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면서 돈으로 양반을 사는 중인들이 많아지면서 양반이 늘어나고 일제시대 겪으면서 신분제도 폐지되니 양반가들은 우리는 원래 순혈양반이다 란 생각에 차별성을 가지려고 간소함을 때려치고 위에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강조하는 등 예법을 중시하기 시작함. 그러면 좀 있어보이니깐. 그러면서 점점 여유 좀 있다 싶은 사람들도 있어보는 제사 예법 차용하고 경쟁적으로 상다리를 휘게 차리기 시작. 그러다가 80년대 부터 경제 성장하고 중산층이 늘면서 나라 전체가 이렇게 상차림을 하게 된거. 지금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은 부모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얘기가 예전엔 못살아서 차례상 이렇게 못 차렸다 란 얘기임.즉 60-70년대에도 이렇게 까지 차례상 못차렸음. 그게 나름 한이 되서 먹고 살만해지니 노인들이 자꾸 차례상을 크게 차리려고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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