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충 아비2024.04.09 00:44
흠.. 과거를 실제로 약간 걸쳐본 사람으로서 외람되지만 어렵게 한마디 하겠네.

국민학교 상급반 시절에 학교에서 틀어준 라디오 뉴스에서 이승만 전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전교생에게 초대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려줄 만큼 교실의 분위기는 숙연했었다.

중,고,대의 학창시절엔 박정희를 참으로 미워했었다. 집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하면 어머님께선 기겁하셨다.
순사들이나 정보원들이 들으면 잡혀간다고. 손가락을 입에 대시며 아주 진저리를 치셨지.

5개년 경제개발계획? 그건 민주당에서 만들었던 걸 베낀것 아닌가? 심지어 민주당의 계획이 훨씬 더 좋잖아?
대학 교련시간은 땡땡이가 당연했고 군대에선 억지로 전두환의 정책에 투표했었다.(아쉽게도 자세한 기억은 없어졌다.)
광안리가 한창 뜰 즈음엔 가라오케를 했었는데 올림픽이 끝나자 한 달 만에 전두환의 사치향락 풍토가 심하다는 한 마디에
하룻밤 새 내무부 장관령으로 밤장사는 끝장나버렸다. 올림픽 전의 그 자유분방하던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가고...
밤새도록 손님이 끓었던 바닷가 술집인데.. 동네 달건이들 다 정리하고 이젠 돈 셀 일만 남았구나 했었는데 ㅉㅉ.

일제에서 비롯되어 군부독재로 이어진 강압과 구타의 시대엔 집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참 쉴 새 없이 맞았었다.
부모에겐 자식의 관심이나 자존심 따윈 필요없었고 발가벗겨서 옥상에 올리거나 무릎꿇려 뺨을 치고 몽둥이로 때렸다.
오로지 그들의 목적은 일류학교와 전교1등의 우등 아들을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자 목표였다.

그 트라우마로 국민학교 시절부터 수재로 소문나서 이 학교, 저 학교로 스카웃되어 전학하고, 소위 일타선생들의 특별반이나
정예 과외반에 늘 무료로 초청되어 옮겨다니던 호사를 누리며 일류 중학교 시험에 합격했었지만 입학과 거의 동시에
공부는 손을 놓았다. 6년만의 졸업식엔 오지도 않으면서 졸업앨범조차 사 주지 않았는데 공화당위원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은 그날 당장 표구를 해서 마루 정면에 걸어 놓은 걸 보고 내가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였음을 알았다.

그제서야 되새겨보니 내가 맞을만한 잘못은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고 설령 잘못이 있었던들 맞을 일은 결코 아니었으며
그냥 가정폭력이었을 뿐, 미처 말리진 못 하고 둘러서서 안타까워만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처음 오리엔테이션에서 도서관이란 걸 처음 보자마자 했던 결심대로 도서관의 책을 내가 볼 수 있는
수준에선 다 봤다. 마지막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는데 젠장, 그건 지금 봐도 어렵더군.
(졸업 전에 다 보자고 했는데 3학년 올라 갈 즈음 사전류, 한문책 외엔 볼만한 책이 없었다.
그 당시엔 지금만큼은 책이 많지 않았고 결국 시시하다고 팽겨쳤던 무협소설의 속시원한 호방함에 빠져버렸다! ㅋ
아, 그리고 에리히 캐스트너의 '날아가는 교실'은 거의 45회독을 했구나. 참으로 내 속을 달래주는 탈출구였다.)

아무튼 나의 유년과 청년을 거쳐 대통령들은 거의 악마시되었다.
그런데 영웅시되던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에 이어 현재의 윤석열까지 많은 대통령을 모두 뽑아봤는데
날이 갈수록 어째 박정희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더구나.
작아도 다부지고 용맹하며 확신에 차서 부지런히도 전국을 돌며 경제발전을 채근하던 힘찬 모습이 그리워지더군.

다시 생각을 더 거슬러 가보니 어른들께서 이박사, 이박사하면서 친근하게 부르시던 모습들과
우남공원(용두산 공원)을 자랑스레 아끼시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신문에서, 교과서에서 그토록 보았던 이승만의 잘못이나 무책임한 정책들과 대중의 정서는 또 다른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땐 지역감정따윈 없었다네. 김대중은 영남에서, 박정희는 전라도에서 더 많은 표를 얻곤했다.
아버지와 같이 갔던 젊은 김대중의 부산역 광장의 대선 연설엔 엄청난 부산시민들이 환호했었다.

이제 나이가 더 들면서 여러가지 자료와 시중의 이야기들을 알게되었고 때론 철부지들의 확증편향적인 적개심이나
세대갈등, 남녀갈등에 지역갈등과 빠와 까의 대립도 알게됐다. 이런, 청춘남녀 간에도 미움이 우선한다니!

서두가 길었지만 70객이 이제라도 알게된 것은 이 시대의 논리로 그 시대를 재단할 수 없다는 것과 이승만은 건국과 안보에서,
박정희는 경제개발과 한민족의 자존감 부양에서 세계의 그 누구도 쉬이 할 수 없는 공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지독한 이와 박의 까였지만 이젠 일부 빠로서도 기능하고 있으며 후대들도 좀 더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
이승만이 비록 많은 국민을 죽였다지만 그 죽은 국민들은 과연 온건하기만 한 국민이었는지와 일방적인 매도를 당해왔다는 점,
박정희가 비록 정경유착의 폐해를 남겼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뉘라서 이런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박정희밖에 없고 영원히 그만 대통령이 될 거라는 착각속에서 산 적이 있다네.
그럼에도 머리가 굵어지면서 군부에 맞서 부마항쟁과 6.10운동 등으로 그들과 맞서왔고 나의 국민학교 동급생은
부림사건(영화'변호인')의 실제 피해자이며 또 다른 친구는 부마항쟁 때 군경들에게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

우리의 과거를 혹은 인물들을 너무 극단적으로 보지 말며 남녀 간에도 좀 더 사랑과 설렘이 교차되길 바라네.
다들 건승하시기를 빌고 긴 글 읽어주셔서 참으로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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